관악의 동명 유래 - 봉천동(청능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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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능 마을은 현재 봉천4동 1574번지부터 1584번지 일대의 청능산 밑에 있는 자연부락으로 지금의 청룡종합시장 부근에 해당한다. 이곳 청능말은 42호가 거주하던 전형적인 농촌 마을로 경주 김씨 계림군파 후손들이 30여호 살고 있다. 이곳에서 10대째 살고 있는 김용성씨(63세)와 전관악구의회 의원이었던 허명길씨 등이 대표적인 토박이 성씨들이다. 또 여섯 가구 정도의 양천 허씨 자랑공 후손이 8대에 걸쳐 살고 있다. 이곳은 1970년 봉천동 1584번지 일대를 택지화 하면서 청능보다 청룡이 좋다 하여 단지를 조성하던 현 장소에서 청룡 마을이라 이름을 붙여 지금껏 쓰고 있는데 이것은 잘못된 것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청능이란 이름은 조선조 태종대왕의 장자인 양녕대군 후손들이 ‘푸른 솔밭이 삼태기 안처럼 생겨 능자리와 비슷하다’라고 한 데서 유래된 것이다. 또 일설에는 강감찬 장군이 이곳을 지나면서 푸른 솔밭을 보고 “능자리로 하였으면 좋겠다”라고 말한 것에서 유래되었다고도 한다. 그러므로 지금의 청룡이라는 이름보다 본래의 청능이 역사적 사실로 보아 올바른 마을 이름인 듯하다. 마을의 뒷산은 청능산, 그 정상은 매봉제라 불렀으며 이곳은 한국전쟁 때 유엔군이 인천상륙 후 진지를 구축하고 적과 전투를 벌였던 격전지이기도 하였다. 필자도 당시 매봉제에 올라 적이 패퇴하던 모습을 봤던 것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청능산은 야산이라 예전부터 너구리, 여우, 토끼가 많았으며 솔개(매)가 토끼 등을 잡기 위해 항상 산 정상에서 숲속을 관찰하고 있어 매봉제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이다. 청능 마을에도 도당나무가 있어 매년 음력 10월 1일에는 마을의 풍년과 안녕을 빌기 위하여 마을 주민들이 정성 들여 도당 제사를 지내오고 있다. 이곳 청능 마을에도 옛 지명의 흔적이 남아 있다. 황새골이라 부르던 마을 뒤편 골짜기는 철새 도래지로 황새들의 서식지였고, 애개미라고 이름하던 마을 앞의 들판은 지금의 봉천 지하철역 주변이며, 신절이고개는 청능 마을에서 새실 마을로 넘어가는 고개였다. 또한 봉천사거리 부근에는 약 8천평 가량의 자라 모양의 산이 있어 이를 자라산이라 불러 왔는데 구획정리 사업으로 없어졌다. 지금의 봉천8동 1544번지 일대를 숯고개라 부르는데, 옛날 숯을 굽는 가마터가 있어 숯고개라 부르던 것이 와전된 것으로 추정된다. 즉 현재의 ‘쑥고개’란 이름은 ‘숯고개’의 잘못된 표현이다. 한편 쑥고개 서쪽에는 고려장이 있었으나 1970년대 구획정리 때 없어졌다. 봉천동 산149번지 7호는 장군봉이라 부르는데 강감찬 장군이 이곳을 훈련장으로 사용했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일제시대에는 일본군이 공습에 대비해 이곳에 고사포 진지를 구축하고 밤에 탐조등을 비추었다. 그 때문에 일명 ‘화경터’라 불리기도 했다. 청능 마을에도 유일한 마을 주민들의 식수터인 오두물이라는 샘터가 마을 한가운데 있었는데 지금 봉천4동 1584번지 23호에 위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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